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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백혈병으로 자주 학교를 빠졌습니다. 그 당시엔 '아프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최근 혈액암에 대해 제대로 찾아보고 나서야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실감했습니다. 혈액암은 생각보다 훨씬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놓치기도 쉽습니다. 특히 지난 20년간 치료 성적이 가장 많이 개선된 암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저에겐 꽤 의외였습니다.

초등학교 친구의 백혈병,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
그 친구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와 함께 등하교하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체육 시간마다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고, 담임 선생님도 특별히 배려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냥 몸이 많이 약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중학교가 따로 배정되면서 그 후 소식은 알 길이 없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백혈병에 대해 찾아보고서야 그게 혈액암의 일종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혈액암은 백혈구에서 기원하는 암입니다. 혈액 속 세포 중 핵이 있는 세포가 백혈구인데, 적혈구와 혈소판은 핵이 없어서 암 세포로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혈액암은 이 백혈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면서 시작됩니다. 백혈구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거기서 파생되는 암의 종류도 여럿입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림프절과 림프관에서 발생하는 악성 림프종, 골수 내 형질 세포가 비정상 증식하는 다발 골수종, 그리고 제 친구가 앓았던 백혈병입니다. 백혈병은 다시 기원 세포(골수성 vs 림프구성)와 진행 속도(급성 vs 만성)에 따라 세분됩니다. 이 분류가 단순한 이름 붙이기가 아닌, 치료 전략 자체를 바꾸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 제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혈액암은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암'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찾아보니, 최근 20년 사이에 치료 성적이 가장 많이 향상된 암 분야 중 하나가 혈액암이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유형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무조건 사망'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맞지 않습니다.
종류와 진단, 이름이 달라지면 치료도 완전히 달라진다
솔직히 처음에 이 부분을 공부할 때 꽤 복잡하다고 느꼈습니다. 같은 혈액암이라도 세포의 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쓰는 항암제가 달라지고, 예후도 달라집니다. 특히 악성 림프종의 경우, B세포 림프종이냐 T/NK세포 림프종이냐에 따라 표적 치료제 사용 가능 여부 자체가 갈립니다.
표적 치료제란 특정 유전자 변이가 발현된 암세포만을 골라서 공격하는 약물입니다.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일반 항암제와 달리, 목표 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B세포 림프종에서는 리시합(R-CHOP)이라는 표적 치료제 도입 이후 치료 성적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반면 T/NK세포 림프종에는 아직 이에 해당하는 표적 치료제가 없어, 같은 림프종이라도 출발이 다르면 치료 선택지도 달라집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진단 과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혈액 검사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골수 검사(Bone Marrow Biopsy)로 확진합니다. 골수 검사란 뼈 안쪽에 있는 붉은 조직, 즉 골수에서 직접 세포를 채취해 종양 세포의 비율과 유전자 변이를 분석하는 검사입니다. 여기서 백혈병 세포(모세포)가 골수 내 전체 세포의 20% 이상을 차지하면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진단됩니다(출처: 국가암정보센터).
진단 이후에는 유전자 및 염색체 검사를 통해 환자의 예후군을 결정합니다. 예후군이란 치료 후 생존 가능성을 예측하는 등급 분류입니다. 좋은 예후군은 조혈모세포 이식 없이도 70% 이상의 5년 생존율을 보이지만, 안 좋은 예후군은 이식 없이는 10~20%에 불과합니다. 같은 백혈병 진단이라도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 이식 여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조혈모세포 이식 — 동종과 자가의 차이
조혈모세포 이식(Hematopoietic Stem Cell Transplantation, HSCT)은 환자의 골수에 있는 암세포와 정상 세포를 모두 제거한 뒤,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해 새로운 혈액 생성을 유도하는 치료법입니다. 쉽게 말해 망가진 조혈 공장을 통째로 교체하는 개념입니다.
이식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 동종 이식: 타인의 조혈모세포를 이식. 조직 적합 항원(HLA)이 8개 중 8개 일치하는 형제가 최상의 공여자이며, 반일치(4개)도 현재는 이식이 가능합니다. 이식편대 숙주 질환(GVHD)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자가 이식: 환자 본인의 조혈모세포를 미리 채취해 냉동 보관했다가, 항암 치료 후 다시 이식. 다발 골수종에서 주로 활용되며, 면역 거부 반응이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식편대 숙주 질환(GVHD)이란 이식된 림프구가 환자 자신의 신체를 '이물질'로 인식하여 공격하는 면역 반응입니다. 이식 후 100일을 기준으로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되며, 약 60%의 환자가 만성 GVHD를 경험합니다. 최근 신약 개발로 치료 성적이 개선되고 있고, 경미한 경우 국소 치료만으로 관리 가능합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초기 증상, 감기인 줄 알고 넘겼다가는
제가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가장 놀란 건, 혈액암의 초기 증상이 너무 일상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피곤하다, 숨이 차다, 멍이 잘 든다. 이것만 보면 과로나 빈혈 정도로 넘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환자들 중에는 장염 증세(구토, 설사)로 병원을 찾았다가 혈액암을 발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증상이 애매한 이유가 있습니다. 골수의 정상 조혈 기능이 떨어지면서 적혈구, 혈소판, 호중구가 모두 감소하는데, 각각 다른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적혈구가 줄면 빈혈 증세(피로, 어지러움, 호흡곤란), 혈소판이 줄면 멍과 출혈이 잘 멎지 않는 증상, 호중구가 줄면 발열과 잦은 감염 증상이 생깁니다. 호중구란 세균과 곰팡이 감염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면역 세포인데, 이게 부족해지면 가벼운 감기처럼 보이는 증상이 반복됩니다.
저도 이 글을 정리하면서 제 주변을 다시 떠올려봤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멍이 자주 생긴다거나, 체중이 줄고 있는데 식사에 문제가 없다거나 하는 경우라면 그냥 넘기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발 골수종의 경우에는 CRAB 증상이 진단 기준으로 쓰입니다. CRAB이란 고칼슘혈증(Calcium elevation), 콩팥 기능 저하(Renal insufficiency), 빈혈(Anemia), 뼈 병변(Bone disease)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치료를 시작하는 기준이 됩니다.
또 다발 골수종에서 독특한 부분은 M 단백 검출입니다. M 단백이란 비정상 형질 세포가 만들어 내는 면역 단백질로, 혈액과 소변 검사에서 검출됩니다. 이 수치가 진단뿐만 아니라 치료 반응을 추적하는 지표로도 활용됩니다. 실제로 골수 내 형질 세포 비율이 정상 범위인 1~3%를 넘어 10% 이상으로 높아지고, M 단백이 검출되면 다발 골수종으로 확진합니다. 6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75%를 차지해 '노인 혈액암'으로 불리지만, 골수성 백혈병은 7년 사이 50.8% 증가했고 20~30대 환자도 적지 않습니다. 젊다는 이유로 안심할 수 없는 병이라는 점이 제 경험상 가장 와닿는 부분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혈액암은 완치가 되나요?
A. 과거에는 완치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찾아보면 유형에 따라 상당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B세포 림프종은 표적 치료제 도입 이후 완치율이 크게 높아졌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도 좋은 예후군의 경우 이식 없이 70% 이상 생존하는 사례가 보고됩니다. 치료가 까다로운 건 사실이지만, 완치 가능성이 있는 병이라는 시각도 충분히 근거가 있습니다.
Q. 조혈모세포 이식은 무조건 형제한테 받아야 하나요?
A. 형제가 가장 이상적인 공여자인 건 맞지만, 형제가 없거나 적합하지 않아도 방법이 있습니다. 현재는 조직 적합 항원(HLA)이 절반만 일치하는 반일치 이식도 가능하고, 부모와 자녀 간 이식도 진행됩니다. 10~15년 전에는 형제 간과 타인 간 이식의 성적 차이가 컸지만, 지금은 그 격차가 많이 좁혀졌습니다.
Q. 혈액암 환자가 절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있나요?
A.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세균 번식이 쉬운 음식은 피하는 게 원칙입니다. 묵은지, 오래된 장류, 여름철 쉽게 상하는 음식, 익히지 않은 생선 등이 해당합니다. 또 만성 골수성 백혈병 일부 치료제는 자몽과 상호 작용해 약물 농도가 불규칙해질 수 있어, 자몽 섭취를 피해야 한다는 주의도 있습니다. 과일과 생채소는 먹기 직전에 여러 번 씻어 껍질을 벗겨 먹는 게 권장됩니다.
Q. 다발 골수종이 노인 혈액암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뭔가요?
A. 전체 다발 골수종 환자의 75%가 60대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뼈 통증이나 빈혈 증상이 노화와 비슷해 초기에 단순 노인성 질환으로 오인하기도 쉽습니다. 최근 환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만큼, 이유 없이 뼈가 아프거나 쉽게 골절이 생긴다면 혈액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보면서 주변 어르신들께 권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
초등학교 때 그 친구를 다시 떠올리면서 이 글을 썼습니다. 그때의 저는 백혈병이 어떤 병인지 전혀 몰랐고, 그냥 많이 아픈 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도, 옆에서 매일 등하교를 함께했던 어머니도 정말 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혈액암이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사실, 그리고 초기 증상이 일상적인 피로나 감기와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 제겐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완치율이 높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형과 예후군에 따라 치료 결과가 크게 달라지고, 20년 전보다 훨씬 많은 환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됐습니다.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증상을 미리 알고, 이상 신호가 반복될 때 혈액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dHJiwSslNM&si=am3nfspIlu_rwP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