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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고 "B형 간염 항체 없음"이라는 문구를 본 날, 솔직히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아산병원 임영석 교수팀이 란셋(Lancet) 자매지에 발표한 연구를 접하고 나서야, 항체 하나의 유무가 얼마나 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간 수치가 정상이어도 안심할 수 없고, 바이러스 수치에 따라 간암 위험이 최대 8배까지 달라진다는 내용은 제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회색지대의 함정
저는 오랫동안 "간 수치(ALT)가 정상이면 괜찮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오해였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ALT(알라닌 아미노전이효소)란 간세포가 손상될 때 혈액으로 새어 나오는 효소입니다. 쉽게 말해 간세포가 터져야 수치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간세포가 터지기 전에도 바이러스는 이미 복제를 거듭하며 조용히 간 조직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도에서 진행된 간 생검(간 조직 일부를 직접 떼어내 분석하는 검사) 연구에서는 ALT 수치가 완전히 정상인 환자의 약 40%에서 이미 간섬유화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간섬유화란 간에 흉터 조직이 쌓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간이 반복적으로 손상되면 정상 세포 대신 딱딱한 섬유 조직이 자리를 채우는데, 이 과정이 오래 지속되면 결국 간경변증으로 이어집니다. 섬유화 2단계 이상이면 장기적으로 간경변·간암 위험이 높아지는데, 수치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이미 이 단계가 진행 중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지표가 혈소판 수치입니다. 간이 딱딱해지면 혈류가 비장 쪽으로 몰리고, 비장이 혈소판을 가두는 저수지처럼 작동해 말초 혈액 속 혈소판이 줄어듭니다. 혈소판 수치 20만 이상이면 위험이 낮고, 15만 미만으로 떨어질수록 간섬유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ALT 수치만 보던 제 시각이 얼마나 좁았는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새삼 느꼈습니다.
- ALT(간 효소) 수치가 정상이어도 간섬유화는 진행 중일 수 있다
- 혈소판 수치가 낮을수록 간 손상 진행 가능성이 높다
- HBV DNA 검사로 바이러스 수치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 현재 건강보험 급여 기준은 ALT 위주라 '회색지대' 환자를 놓칠 수 있다
조기치료의 근거
바이러스 수치가 높을수록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를 보면 이야기가 다소 달라집니다.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이 약 6,300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B형 간염 바이러스(HBV DNA) 수치와 간 질환 위험 사이의 관계는 선형이 아닌 비선형 구조를 보였습니다. HBV DNA란 혈액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 양을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수치가 5~7 log unit(10만~1,000만 IU/mL) 구간일 때 간암 위험이 최대 8배까지 치솟고, 오히려 그보다 수치가 더 높아지면 위험도가 낮아지는 역설적인 패턴이 확인됩니다. 이는 한국·홍콩·대만 3개국 데이터를 합산 분석했을 때도 동일하게 재현됐습니다(출처: The Lancet 자매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임영석 교수팀은 한국 10개 병원, 대만 12개 병원과 공동으로 78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대조 시험(RCT)을 진행했습니다. RCT란 환자를 무작위로 두 그룹에 배정해 치료 효과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의학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근거로 인정받는 연구 설계입니다. 4년 시점의 중간 분석 결과, 조기 항바이러스제 치료군에서는 간경변증이 2건 발생한 반면,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9건이 발생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됐습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현재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30세 이상이고 HBV DNA 수치가 1만 IU/mL(4 log unit) 이상이라면, ALT 수치나 e항원 양성 여부와 관계없이 조기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기존 기준이 너무 복잡하고 엄격해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출처: 대한간학회).
"바이러스 수치가 높으면 더 위험하다"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데이터를 보면서 그 상식이 특정 구간에서만 맞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수치가 낮아지는 시점, 즉 면역계가 바이러스와 싸우며 수치를 끌어내리는 바로 그 과정이 오히려 간 조직에는 가장 혹독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완치전망과 지금 할 수 있는 것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건강검진에서 B형 간염 항체가 없다는 결과를 받고도 저는 꽤 오래 예방접종을 미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였지만, 사실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어"라는 막연한 안심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결국 보건소에서 1차 접종을 마쳤는데, 한 달 뒤 2차를 맞으러 가야 할 시점에 대상포진이 터졌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대상포진 치료 중에는 다른 예방접종을 피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셔서 접종을 연기했고, 그 사이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습니다. 아마 지금은 1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B형 간염 예방접종은 총 3회 접종(0·1·6개월 간격)을 완료해야 항체 형성률이 95% 이상에 달하기 때문에, 중간에 중단되면 처음부터 재시작이 권장됩니다.
현재 항바이러스제 치료는 완치가 아닌 바이러스 억제, 즉 관리 개념입니다. 약을 중단하면 약 70%에서 1년 내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기 때문에 대부분 장기 복용이 필요합니다. 표면항원(HBsAg)이 혈액에서 소실될 경우 복용을 중단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연간 0.5% 수준으로 매우 드뭅니다. 표면항원(HBsAg)이란 B형 간염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로, 이 항원이 혈액에서 검출되면 여전히 감염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3년 내 기능적 완치를 목표로 하는 신약들이 임상 단계에 있습니다. 첫 완치제의 경우 반응이 좋은 환자군에서 완치율 30% 전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후 세대 약물에서 그 비율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C형 간염이 완치제 도입 이후 치료 패러다임이 바뀐 사례를 생각하면, B형 간염도 비슷한 흐름이 올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지금 당장 치료 기준이나 급여 정책이 바뀌지 않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합니다. 컨디션이 안정되는 즉시 B형 간염 예방접종을 다시 시작하고, HBV DNA 검사와 혈소판 수치를 포함한 정기 검진을 챙기는 것입니다. 간이라는 장기는 망가져도 한동안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리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간 수치(ALT)가 정상이면 B형 간염 치료를 안 받아도 되는 건가요?
A. 간 수치가 정상이라도 치료가 필요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ALT가 정상인 환자의 최대 40%에서 이미 간섬유화가 진행 중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ALT보다 HBV DNA 수치와 혈소판 수치를 함께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Q. 비활동성 B형 간염 보유자도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A. HBV DNA 수치가 2,000 IU/mL 미만인 비활동성 간염의 경우, 현재 기준으로는 치료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본인이 스스로 비활동성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바이러스 수치가 높은데 ALT만 정상이어서 오해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의료기관에서 HBV DNA 검사를 통해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Q.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중간에 끊으면 처음부터 다시 맞아야 하나요?
A. 접종 간격이 크게 벌어진 경우 처음부터 재시작이 권장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경우도 대상포진으로 중단된 이후 시간이 너무 흘러 1차부터 다시 맞아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접종 완료 후 6개월 뒤 항체 검사를 통해 항체 형성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가족 중에 B형 간염 환자가 있으면 같이 사는 것만으로도 감염되나요?
A. 일상적인 식사나 대화로는 전파되지 않습니다. B형 간염은 혈액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칫솔, 면도기처럼 혈액이 묻을 수 있는 물건 공유를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 구성원이 항체가 없다면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결론
이번 연구 내용을 접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흔들린 부분은 "간 수치가 정상이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간은 손상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스스로 신호를 보내지 않는 장기입니다. 그래서 검사를 통해 먼저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데, 저처럼 항체 확인을 미루고 접종을 중단한 경험이 있다면 지금 바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 수치가 1만 IU/mL 이상이고 30세 이상이라면 ALT 수치와 관계없이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이드라인과 급여 기준이 연구 결과를 따라잡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맞지만, 그 사이에도 정기 검진과 HBV DNA 수치 확인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입니다. 3년 내 완치 신약이 도입될 가능성이 있는 시점이기도 한 만큼, 지금 간을 최대한 건강하게 유지해두는 것이 그 약의 혜택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입니다.